거창신씨 역사자료 올리기

음석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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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5-08-29 09:09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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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석陰石전설


  

 

거창읍에서 가조면으로 가는 길목 1.5km 지점에 위치한 양평 부락 앞에는 돌을 쌓아 올려서 

경주의 첨성대 모양으로 만든 큰 돌무덤이 있다

이것은 1980년 이 부락의 유지이신 신종옥 씨가 사재(私財)를 털어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장소에는 옛날에 거대한 바위가 원래 여기에 있어서 이 바위의 그늘이 부락을 덮었으므로 

양평의 옛 이름은 그늘이 진다고 하여 그늘뜰>그 느뜰>그네뜰>가내뜰로 불리워 왔다고 하며

또는 그늘을 만드는 바위가 있는 부락이라 하여 음석(陰石)이라고 했다한다.

 

옛날부터 이 부락은 거창 신()씨가 대종을 이루어 살고 있던 부락으로서 

조선초 연산비와 중종비인 단경왕후를 배출한 가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신씨들의 위세는 가히 인근 고을을 뒤덮고도 남음이 있었다

음석전설은 이러한 배경을 갖고 시작된다.

 

옛날 이 부락에 대종을 이루던 신씨들은 그 위세가 당당하여 안하무인이었으며

특히 척불숭유하던 시절이라 중들에 대한 멸시와 학대는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이 부락 옆에 미륵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의 중들이 가네뜰 신씨 집안에 가서 시주를 구하게 되면 

그들은 시주는 커녕 중들을 잡아다가 구타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 질매를 지워서 소처럼 부리기도 하여서 

중들이 봉변을 당하는 수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미륵사의 중들은 다른 부락에 가서 시주를 얻어 오고, 가네뜰 신씨 부락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간혹 내막을 모르는 다른 절의 중들이 양평 부락에 들러 시주를 부탁하게 되면 

어김없이 봉변을 당하여 엉금엉금 기어서 부락을 나오기가 일쑤였다.

하루는 미륵사에 도승이 한 분 와서 머무르다가 신씨들의 행패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미륵사 중들이 만류하는 것도 듣지 않고 그네뜰의 신씨 집안으로 시주를 얻으러 갔다

도승은 신씨들 문중 중 가장 높은 대문을 한 집 앞에 가서 불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도승의 독경 소리는 목탁소리와 함께 금시에 그 집안과 이웃에 퍼졌고

한동안 중들이 오지 않아 심심하던 신씨 집안의 종들이 기세 좋게 대문을 열어 젖히고는 

불경을 외우고 있는 도승을 다짜고짜로 잡아 팔을 비틀어 가지고는 집 안 뒷편에 있는 곳간으로 끌고 갔다.

중들을 잡아서 사행을 가하고, 심지어는 귀까지 잘라 버리는 악행을 자행하던 종들은 

신이 난듯이 도승을 형틀에 얽매려고 하였다

그러나 떡 버티고 서있는 도승은 꼼짝도 하지 않으며, 그의 눈에서는 빛을 발하고 있다

이것을 본 집사와 하인들은 도승의 위세에 눌리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있었다

이것을 본 도승은 빙그레 웃으면서 집 주인을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

집사와 종들은 보통 중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도승을 집주인에게 안내했다.

도승을 본 신씨는 도승의 몸에서 풍기는 위엄과 안광을 보고는 어떤 침범 하지 못할 힘이 이 도승에게 있음을 직감하고는 

무슨 일이 있어 자기를 만나자고 했는가를 물었다

도승은 하인들을 물리치라 한 후 주인과 대좌하여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내 이야기를 명심하시오. 귀 가문은 마을 앞에 우뚝 선 음석의 보호로 지금까지 부귀와 영화를 누려 왔소

그러나 이제 음석의 영험이 다 되어서 앞으로는 좋지 않은 영향만을 귀 가문에 주게 되어 

하루 아침에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 것이오

 

이 말을 들은 주인의 얼굴빛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지금 이들 가문에서는 현재의 왕인 연산군의 왕비가 자기네들 가문인 신씨의 출신이고

좌의정, 형조판서 등과 같은 고관대작들이 현직에 수없이 있어 그 세도가 당당 하거늘 

이러한 운세가 앞으로 하루 아침에 끝나게 된다니 끔찍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으며,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믿을 수도 없는 기가 막힌 상황이라 주인은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이러한 주인의 태도를 가만히 살피던 도승은 재난을 피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 실천할 수 없을거요."라고 했다

도승의 이 말은 들은 주인은 체통도 잊어 버리고 도승의 손을 덥썩 잡고는 

"무슨 짓이라도 좋으니 그 방법을 알려 주시오, 만약 그 방법만 알려 준다면

 결코 그 은혜는 잊지 않고 천금 만금이라도 사례하겠소"하며 다급히 말했다

주인의 말을 듣고 난 후 한참동안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염주알을 굴리던 도승은 주인이 다급히 다시 물어 오는 소리에 두 눈을 뜨고는 음석을 없애 버려야 하오. 앞으로 당신들의 가문에 재앙의 그림자만 던져 줄 음석을 없애 버려야만 하오

그래서 부락이 확트이게 되면 당신의 가문에는 천대 만대를 누릴 수 있는 

부귀공명이 뒤 따를 것이오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내 말을 믿든 말든 그것은 당신들이 알아서 할 일이요"하고는 

주인이 붙잡는 것도 웃음으로 거절하고는 유유히 집 밖으로 사라졌다

하도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주인은 마치 귀신에게 홀린 양 도사가 밖으로 나간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멍한 상태에서 밖으로 나올 줄을 몰랐다

도승의 말이 참말인지 거짓말인지도 분별이 안 갈 뿐더러 그 거대한 바위를 없앤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날부터 신씨 문중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종회가 계속하여 여러 날 열렸고

한편으로 거창 주변의 절을 모조리 뒤지어 그 도승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도승은 어느 절에서도 찾지를 못했고, 갑론을박 끝에 마침내 음석을 없애기로 결정을 보았다

36척이나 되는 높은 바위를 없애는 큰 역사가 시작되면서, 인근의 모든 석공들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동원되었던 것이고

그 역사가 몇 해가 걸려서 신씨들은 자기들이 갖고 있는 권세와 부를 밑천으로 하여 거대한 음석을 끝내 없애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음석 바위가 마지막 그 뿌리가 없어질 때 그 바위 밑둥치 속에서 흰빛을 발하는 새가 세 마리 날아 나와서 뿌리채 뽑혀 없어진 음석바위 주변을 몇 바퀴 맴돌다가 슬픈 울음을 남기고는, 한 마리는 신씨들의 선산이 있는 동변리 구산으로 날아 가고, 다른 한 마리는 위천면 황산 신씨의 선산인 생림재 쪽으로 날아 갔으며, 한 마리는 날개를 추욱 떨구더니 갑자기 아래로 떨어져 무너진 음석의 바위틈으로 들어 갔는데, 아무리 사람들이 그 새를 찾으려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음석이 파괴되는 순간 가네뜰에서 동남으로 4km 정도 떨어진 남하면 양곡 마을 앞에 솟아 있던 양석이 

갑자가 하늘을 뒤 흔드는 소리 와 함께 몰아친 번개에 맞아 깨어져 버려 지금은 평평한 평석으로 남아 있다

음석이 없어지고 난 몇 년 후, 드디어 중종반정이 일어 나고 그때까지 세도를 누리던 거창 신씨들은 일조에 몰락하고 말았으니, 연산군의 왕비 신씨는 물론이고 반정을 한 중종의 비 또한 당시의 좌의정이었던 신수근이 반정에 가담치 않은 혐의로 역적으로 몰리자 왕비된지 수일만에 폐하여 서인이 되고 말았으며, 인간의 영욕은 뜬구름과 같은 것임을 절감하게 된다.

 

하기로는 황산으로 날아간 새 때문에 지금도 위천의 황산 신씨들 문중에서는 인물이 많이 배출되고 있으나

날개를 늘어 뜨리고 음석으로 떨어진 새는 영험이 없어진 것이기 때문에 

양평 신씨들의 문중에서는 그 후 뛰어난 인물이 배출되지 않는다고 한다.

 

음석이 없어지고 난 후 이 부락 명칭은 양평으로 변했으나

지금도 양평이란 명칭보다 가네뜰이라는 명칭이 더 애용되고 있다. (거창창간호, 재경거창군향우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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